책_읽는다

[독서노트] 사회과학책 만드는 법 / 책 만드는 일에 대하여

thisisyoung 2021. 8. 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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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책 만드는 법
저자 : 김희진
출판 : 유유
발매 :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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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 때 사회 이슈를 환기시키고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에세이나 실용책에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10쪽

 

책 한 권을 제대로 펴내려면 투여해야 할 노동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노동, 번역자의 노동, 편집자의 노동, 디자이너의 노동, 오퍼레이터의 노동, 마케터의 노동, 출력실 담당자, 인쇄소, 제작자의 노동, 창고와 물류업체, 유통업체, 서점원의 노동, 기타 지원 인력의 노동에 제대로 값을 매기려면 얼마나 팔려야 할까?

10쪽

 

책의 발견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전통적으로 책을 알리고 팔던 방식들은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책이 발견되게 하려고 많은 자원을 쏟아 붓다 보면 정작 책 안의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은 삭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마 업종을 초월해 현대 사회의 모든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고충일지도 모르겠다.

11쪽

 

그렇지만 편집자란 어디쯤인가에서 반드시 균형을 찾아내는 사람, 그렇게 책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나름대로 방향을 찾아 나가리라 믿는다. (중략) 하지만 부족함에 대해 절망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이후에는 책과 독자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믿고 기도하는 이들이 편집자다. 나는 이런 훈련을 통해 내가 이 일을 하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12쪽

 

/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저자에게 이런 것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때 저자는 단순히 실망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점차 단행본 쓰기를 포기할 것이다. (중략) 아마 다른 매체나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예비 필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90~91쪽

 

매력적인 저자와 일을 하고 싶을 때, 그 저자가 혹할 만한 최고의 떡밥은 바로 '내가 이전에 만든 좋은 책'이라는 지당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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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글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을 허락해야 하고, 그 독특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것이 다른 모든 목소리들과 어떻게 다른지 섬세하게 구분하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글이 우리에게 도전하고 충격을 주고 화나게 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 월터 카우프만, <인문학의 미래> 63쪽에서 인용

 

완성된 책에서도 저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포착하기가 어려운데, 완성되기 이전의 원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야 할 저자의 태도와 메시지를 찾아내서 그것이 뚜렷이 드러나도록 길을 트는 작업이 쉬울 리가 없다(이상적인 읽기에 이상적인 원고가 필요하다). 모니터링의 근본적인 목표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나나 독자의 문제의식과 엮어 내는 것이다.

103쪽

 

결과적으로 원고의 내용이 바뀌지 않더라도 저자가 이런 의견을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전에 알았더라도 편집자라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다시 확인받는 작업은 더더욱 중요하다. 편집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10~20퍼센트를 위해서 80~90퍼센트의 보이지 않거나 삭제될 노동을 감수하는 것이다. (중략) 편집 일에서 중요한 부분은 대체로 모두 이런 것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노동. 독자는 물론 사장도, 심지어 때로는 저자도 잘 모르는 노동.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할 과정. 이는 앞서 말한 책이 누리고 있는 '신뢰'라는 자원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110쪽

 

/

 

게다가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진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는 있어도 애초에 영혼 없이 일하는 사람도 드물다.

113쪽

 

/

 

비용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은 자원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니 이런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 매출을 많이 내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와 우리 팀과 우리 회사가 어떤 사이클을 만들지를 파악하자는 말이다. (중략) 저런 그림을 계속 염두에 두는 것은 오히려 5천 부 미만으로 팔릴 것이 분명하지만 꼭 내고 싶은 책을 내기 위한 조건과 환경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데 더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120~121쪽

 

내가 사장이나 팀장이 아니더라도, 3년차 이상의 고유 영역을 확보한 편집자라면 머릿속으로 전체적인 시스템과 그 작동 방식 및 흐름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야 내가, 우리 팀이, 우리 회사가 할 수 없고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만큼이나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다.

121쪽

 

/

 

교정교열의 목표는 원고의 내용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원고를 독자들이 더 잘 읽어 낼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 정리정돈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144~145쪽

 

교정교열에 포함되는 일을 한번 짚어 보면 대체로 이런 것이다. 전체 구조와 체제 통일, 부제목*장제목*소제목 등의 확정, 사실관계 확인 및 내용적 오류 확인, 주요 개념 및 용어 사용 통일, 맞춤법 및 띄어쓰기 확인, 주요 개념 및 용어 사용 통일, 맞춤법 및 띄어쓰기 확인 및 통일, 인명*지명 등의 외국어 표기 확인 및 통일, 외래어 표기 확인, 역사적인 사건들*단체명*기관명 등의 고유명사 표기 및 띄어쓰기 확인, 숫자 표기 확인, 도표와 도판 내용 확인, 캡션 확인, 본문 디자인 확인, 인용*서지 사항*참고 문헌 표시 확인, 비문과 오문의 수정,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의 교열 등등. (중략) 교정교열이라는 게 애초에 티가 나는 일이 아니지만(몹시 억울하게도 잘할수록 티가 안 난다), 그래도 아래 몇 가지는 조금만 신경 쓰면 원고가 훨씬 명확하고 깔끔해지는 일이다.

145~146쪽

 

"오전 내내 시 한 편의 수정 작업을 해서 쉼표를 하나 떼어 냈다. 그리고 오후에는 그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다."
- 오스카 와일드

 

아무리 좋은 기획을 했다고 해도 그 기획은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고를 완성하는 것은 저자의 몫이다. 이 경계 설정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략) 사실 공을 들이면 책의 품질은 좋아지고 또 잘 팔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건강한 성과가 아니다. 권한 없는 일에 편집자가 나서고 책임을 지려고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마치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엄마의 경우처럼 그 결말이 사악하다. 원고에도 책에도 저자에게도 그렇다. 책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이 편집의 핵심이다.

154~155쪽

 

/

 

하지만 나는 독자를 설득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독자와 논쟁을 하고 독자를 가르치고 독자를 바른길로 이끌겠다는 환상은 최소한 편집자의 환상은 아니다. 좋은 책을 냈는데 독자가 외면하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것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책이 읽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계하고 전략을 짜고 조준을 하지만 정작 읽히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8~199쪽

 

인문사회 분야의 책이라도 '읽혀야' 책이라는 뜻이다.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믿음을 나는 취미나 사명이 아닌 '업'으로 편집을 하는 사람들의 최고 직업윤리로 꼽는다. (중략) 사회과학책이라고 해서 소수의 독자만을 정조준하겠다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꿈과 희망을 더 크게 가지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답을 하자면, 홍보와 마케팅은 편집자의 일,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199쪽

 




#1.
어쩌다 보니 인문교양 혹은 사회과학이라 불리는 분야의 책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내 직업적 정체성은 편집자, 그중에서도 인문사회 편집자다. 회사를 떠나서 외주자로 일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회사를 다니는 동기들은 팀장 혹은 과장 급으로 한참 최전방에서 일한다. 하지만 업계에 대한 회의감이 업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번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대부분(나 역시) 다소 시니컬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 나오면 살펴보고, 궁금해하고, 일단 사고, 결국엔 이렇게 읽고야 만다.ㅎㅎㅎㅎ 그저 웃음만.^^


저자의 의도는 이런 쪽이 아니었겠지만, 웃픈 마음에 굳이 이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내 친구들 또한 이렇다. 책을 좋아하고, 자기 일을 좋아한다. 이번 책이야말로 영혼 없이 대충 만들겠다고 말해놓고, 결국 열과 성을 다한다. 영혼 없이 만들겠다는 말도 자신을 조금이나마 덜 옥죄기 위한 자기 주문일 뿐... 성실하게 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실에 부딪히며, 결국 지쳐 떠난다. 적어도 3년 이상 다녔던 친구들은 거의 이런 경우였다. "일은 좋은데 업계는 싫어."
발을 반만 걸치고 있는 나도. 이제는 컨트롤할 일이 적은데도, 이 책을 보고 있다니... 참ㅎㅎㅎㅎ

이쯤에서 생각나는, 웹소설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더 슬픈 일은 뭔 줄 아세요? 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일을 정말 사랑해서, 책을 만든다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나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중략) 책에 미친 순간부터 제 인생은 꼬여 버린 거지요. 그것도 아주 단단히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지면의 절반 이상을 큰 틀을 이야기하는 데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지쳐 있는 편집자들에게는 다소 거창하고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고루해 보일 수도 있고.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와닿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필요한 곳에 전하고 알리는 일. 그 일을 하는 게이트키퍼의 일. 빠르게 흐르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 주어진 원고가 조금이라도 나은 책이 되도록 애쓰고야 마는 사람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고, 모든 편집자가 이런 건 아니지만요^^;; 제가 아는 사람들은 이렇더라고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2.

이 책은 현직 편집자, 예비 편집자, 그리고 편집자의 일을 알고 싶은 사람이 보는 게 좋다. 철저하게 사회과학책을 편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저자를 섭외하고 기획하며 소통하고 원고를 모니터링하고 교정교열하는 것은 어떤 일인지, 홍보와 마케팅 과정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텍스트와 소통하는 법이나, 자원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역할 같은 도움 되는 내용이 많다. 

기왕이면 사회과학책을 좋아하고 그 책을 만들고 싶은 (예비) 편집자에게 추천한다.

 

연차가 쌓여도 꾸준히 참고하는 기본서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이나 비교적 최근에 나온 <편집자 되는 법>,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쓰기 기술> 등을 가끔씩 펼쳐 본다. 앞으로는 이 책도 가까이에 두고 볼 예정이다. 

이상적인 글 읽기에 관하여. "글이 우리에게 도전하고 충격을 주고 화나게 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이 부분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실질적인 원고 모니터링 과정. 이렇게 정리해본 적 없는데, 잘 정리해주셔서 좋았다.

 

#3.

7장 실제 편집의 과정.

이 파트부터 실제적으로 일하는 법이 나온다. 출판 전체의 과정(특히 그 안에서의 편집자의 일)을 알고 싶은 거라면 여기부터 봐도 좋겠다. 

출판사 입사 전이나 1~2년 차 때는 이런 내용을 배워도 잘 와닿지 않았는데, 오히려 연차가 쌓이고 나니 찾게 된다. 그래서 일하다 막힐 때마다 기본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스타일이다. 한동안 이옥란 선생님의 <편집자란 무엇인가>(유유)에 나온 편집 과정을 되풀이해서 읽곤 했는데, 앞으로는 이 부분을 참고할 듯하다. 

 

실제 편집의 과정, 교정교열의 목적과 목표, 책 패키징, 홍보와 마케팅, 집단으로서의 독자를 존중하기.

 

교정교열에 포함되는 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원어병기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인문사회 분야 책의 교열 기준. 인명과 지명 원어로 바꾸기 등 실제적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나도 첫 출판사(학술 분야)에서 이렇게 배웠다. 이렇게 시작했기에 프리랜서가 된 이후 경제경영이나 청소년 책을 맡았을 때는 조금 어려웠다(적극적 교열이 필요했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어떤 분야든 잘못된 문장이거나 심각하게 이해 안 되는 문장이 아니라면 저자 교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 

 

저 역시 "책임편집을 하는 외주 편집자"로서,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의 경계도 애매함.;;; 아무튼 초반에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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