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읽는다

[독서노트/책추천] 착취도시, 서울 / 정말 나쁜 건 누구인가

thisisyoung 2020. 8. 2. 16:16
728x90

이렇게 무거운 책을 첫 번째로 올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

하지만 이런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라서 일단 올리기로 한다.

(티스토리 오류로 거의 다 쓴 글을 날렸다.ㅠ.ㅠ 한 번 썼던 글을 다시 쓰는 거라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어려웠음.;)

 


 

착취도시, 서울
국내도서
저자 : 이혜미
출판 : 글항아리 2020.02.07
상세보기

 

1. 아기 돼지 삼 형제

나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첫째, 둘째가 한심하고 나쁜 거라고, 셋째 돼지처럼 살면 된다고 배우며 자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었는데. 그걸 오랫동안 몰랐다.

 

나를 셋째 돼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오랜 시간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다고, 나만큼 노력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노력 없이 잘되는 (것 같은) 이들을 보면 속이 꼬이곤 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저녁에 와서 조금 일한 사람에게도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대가를 주는 이야기. 고용주는 애초에 약속한 하루치 급여를 동일하게 줬다고 말하지만, 아침부터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하지 않나.

그렇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이야기가 잘못된 거 아닌가.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일을 늦게 시작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다니.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뭐 이러나, 그동안 착하게 살았던 나는 뭐가 되나.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며 셋째 돼지였던 나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괴롭고 답답했다.

 


2. 내게 주어진 것

내가 가진 게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이제 와서 겨우 하는 고백이다.

내가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려왔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건, 책을 사주는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집은 없었지만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수 있었고, 첫 조카를 아끼며 창작동화를 선물해준 이모들이 있었다. 휴가 때 여행은 못 갔지만 쉬는 날 책 읽던 아빠가 기억난다. 도서관이 멀지 않아서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놀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청소년으로 자랐던 건, 내 책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하면서 동생과 내 밥까지 챙긴 엄마의 희생과 수고 덕분일지도 모른다.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먹을 것 입을 것 없어 걱정해본 적 없다.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학원비를 마련해준 부모가 있었다. 공부만 신경 써도 되는 환경이었다.

 

서울 소재의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집이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이 서울에 있는 게 스펙이라는 말도 한다더라.) 나는 자취할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다. 월세를 내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용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집과 회사가 모두 수도권에 있기에 가능했다.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봉으로 소문난 이 업계에서 최저 시급을 받는 신입으로 생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집을 나와 살아야 했다면 조금의 돈도 모으지 못했을지 모른다. 월세와 생활비, 학자금 만으로도 벅찼을 거다. 

 

결혼을 할 수 있던 것도,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 노력만으로 된 일이 아니다. 나는 검소하고 성실한 사람과 함께 사는 덕을 톡톡히 본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아직까지 일을 하시는 덕이다. 우리의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학에 가자마자 빚이 생겼고, 지하방에 살아서 속상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돌아보면 행복했고, 감사한 일이 더 많다. 내 삶은 거저 얻은 것투성이다.

 


3. 능력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도 괜찮은가

왜 굳이 이렇게 내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나.

모든 책임을 개인의 게으름과 불운에 떠넘긴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가 일상화된 구조를 문제 삼기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나 역시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을 텐데. 

어쩌면 그 일꾼은 아침부터 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 모르는데.

애초에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앗아간 사회에서 능력만을 잣대로 들이미는 게 과연 옳은가?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그런데 그조차 얻기 어려우니 모두들 불안하다. 잡히지 않는 주거 안정성을 향한 열망이 일상을 잡아먹기도 한다.

미쳐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미 미쳐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집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거 안정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몇 번씩 욕하며 읽었지만, 어쨌든 좋은 책이었다.

이런 책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

 

 


 

 

 

 

'서울만 고집하지 말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빈집이 천지'라는 반박 일색이지만, 가난한 이들이 서울 주거를 포기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략) UN사회권규약은 주거권에 대한 한 가지 조건으로 '익숙한 문화에 살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익숙한 곳에 살 수 없다는 것은 기실 철거와 강제 이주를 반복해왔던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비정한 학습 효과다. _15~16쪽
이런 곳에서 세입자는 노숙을 겨우 면한 대가로 매달 22만8188원(서울시 평균)을 월세로 낸다. 폐가에 가까운 건물의 수리는 당국의 세금으로 하고, 세입자에게 받는 면적 대비 월세는 강남 타워팰리스 월세의 수배에 이르는 쪽방, 그 이면에서는 세를 모은 건물주들이 빌딩을 세우고도 남을 부를 증식하는 이 황당한 상황이 창신동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_48쪽
'빈곤 비즈니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행태. 대표적인 불황형 경제 범죄가 2019년 한국 쪽방촌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_58쪽
화장실도 없고, 주방도 없는 쪽방이 태반인데 이론적으로 따지면 월세 5만 원만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1평에 25만 원 수준이면 웬만한 아파트 평당 월세의 다섯 배는 될걸요. _81쪽

1부 지옥고 아래 쪽방


청년의 요구가 징징거림으로 치환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경구가 살아가는 내내 울려대는 세상이다. 젊음은 온갖 착취와 악조건도 극복해내는 만능약이라도 되는가. 주거기본법상 최저 주거 기준이나 각종 규제는 건물주의 탐욕 앞에서 무기력하다. _143쪽
청년은 '빈곤의 표상'이 됨과 동시에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중적 존재가 돼버렸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와 희망도 뒷받쳐 주지 못하고 어떻게든 청년을 착취하려는 사회가, 결혼, 출산 등 재생산을 위한 많은 것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_199쪽

2부 대학가 신쪽방촌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나쁜 것은 누구인가? 게으르고 불운한 첫째, 둘째 돼지인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라도 쌓아올린 그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홈리스'로 만들어버리는 늑대인가? _204쪽

나가며

 

 


 

+함께 읽으면 좋을 책(구조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책 5권)

읽으면서 생각났던 책 몇 권을 덧붙인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국내도서
저자 : 천주희
출판 : 사이행성 2016.09.29
상세보기

한줄평: 대출받아서 대학 가는 일이 당연해져 버린 사회에 대한 비판서.

책 속 한 구절: "대학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라고는 대학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청년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채무자로 만들고 있다. 대학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빚을 지게 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이 강요된 빚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물어야 한다. 특히 채권자들에게 말이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국내도서
저자 : 임상철
출판 : 생각의힘 2019.01.14
상세보기

한줄평: 빅판, 홈리스, 노숙인 등으로 뭉뚱그려지던 삶이 구체적인 목소리가 되어 다가오는 책.

책 속 한 구절: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저도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국내도서
저자 : 봄날
출판 : 반비 2019.11.29
상세보기

한줄평: 착취와 폭력이라는 긴 터널을 견디며 살아남고, 말하고, 걸어가는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책 속 한 구절: "다만 나는 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나답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것이다." 

 

노오력의 배신
국내도서
저자 : 조한혜정,엄기호,강정석,나일등,이충한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6.04.15
상세보기

한줄평: 예상보다 좋은 책이었고 의외로 괜찮은 책이었다. 함께 읽어서 더 좋았다. 

책 속 한 구절: "국가가 정의롭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평하다면 저는 맨몸으로 돌이라도 들고 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내 나라 우리의 나라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중략) 우리 각자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다는 높다란 탑을 쌓아 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핸드 투 마우스
국내도서
저자 : 린다 티라도(Linda Tirado) / 김민수역
출판 : (주)출판사 클 2017.01.23
상세보기

부제: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아직 안 읽어서 한줄평 대신 부제 소개)

책 속 한 구절: "좀 사는 사람들은 느낄지도 모르겠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필요 이상으로는 조금도 더 빠르게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으며, 자유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을 말이다. 그건 우리에게 있는 자원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으르지 않다. 그저 가능할 때 쉬는 시간을 비축할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