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_개인적인/병원 일기

병원 일기 4

thisisyoung 2021. 1. 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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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려고 두서없이 적는 병원 기록.

원래 비공개로 작성해왔으나,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고민하고 검색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며 공개로 바꿔서 작성한다. 나 또한 후기 남겨준 분들 덕을 보았으니.

참고로 앞의 병원 일기 1~3도 같은 게시판에 있음.

 

처음 기록할 때만 해도 난임과에 다니면서 임신을 준비하는 내용이었는데(생각보다 시술 전까지 할 일이 많아서 남겨두고 싶었다), 그 과정에 몸에 있던 다른 병을 발견해서 지금은 말 그대로 '병원 일기'가 되어버림.;;

 

잔병을 달고 살았어도 큰병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일인 거다.

지난 몇 달은 삶과 죽음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12월에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반려병>을 차례대로 읽었고, 지금은 <퍼스트 셀>과 <아픈 몸을 살다>를 같이 읽고 있다. "건강이 최고"라거나 "건강하세요"라는 말이 이제는 조심스럽다. 

 

건강이란 단지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병이 나도 괜찮은 상태'를 의미한다. - <단순하게 살아라> 중에서

 

아무튼, 12월 10일 이후 한 달간의 기록을 남겨보자.

 

 


12월 15일

 

신촌 세브란스에서 MRI 검사를 했다.

 

검사 시간 30분 전까지 가는 게 목표였지만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가는 중에 MRI 검사실에서 전화 와서 "앞사람이 빨리 끝났으니 도착하는 대로 얼른 들어오라고" 재촉해서 읭(?) 했다. 

 

MRI 검사 관(?)은 이전 병원보다 조금 작았고(그래도 다른 병원보다는 큰 편인지, 내가 좀 좁은 것 같다고 했더니 "여기가 제일 넓다"며 내 느낌일 뿐이라고 일축하더라..) 음악도 틀어주지 않았다. 대신 귀마개를 이중으로 줌. 검사실에서 쓰는 마스크도 따로 챙겨줌. 근데 나는 아예 새 마스크 주는 건지 알고 기존에 쓰고 간 마스크 버릴 뻔했다;; (이전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마스크에 있는 철사(?)가 검사에 방해를 줘서 그렇다고 함)

 

확실히 느낀 게, 큰 병원은 좀 불친절하다. 설명도 형식상이고 자세하지 않고, 급하게 돌아가는 느낌. 

물론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곳이니 그만큼 바쁘고 힘들 수밖에 없겠다 싶기는 함.

나는 설명만 잘해줘도 홀랑 넘어가버리는 사람인데, 대형병원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전 병원이 나름대로 큰 병원이지만 여유 있는 편이라서 드물게 친절하고 자세하긴 했다. 

 

그나마 이전 병원에서 겪어본 검사를 다시 하는 거라 미리 알고 있어서 아무렇지 않았지만, 처음 검사하러 오는 사람은 무섭거나 힘들 수 있겠음. ㅠ 실제로 가 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담당 의료인들도 어쩔 수 없어 보이긴 했지만... 이래저래 시스템적인 문제인가 ㅠㅠ 

 

 

아무튼 검사 끝났고, 점심때 맞춰 오빠가 와서 같이 밥 먹고(병원 안의 식당은 프랜차이즈인데도 조금 더 비싼 느낌..? 하지만 너무 추운 날이라 나갈 수가 없었음) 신경외과 오후 진료에 같이 들어갔다.

 

1. MRI 검사한 당일에 결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2. MRI 검사를 다시 했다는 억울함이 사라졌음(-> 이전 병원보다 화질은 여전히 많이 구렸지만... 그때는 15장짜리 사진을 찍었다면 이번엔 180장짜리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3. 피검사는 프로락틴 수치 60 정도. (이 정도 높은 건 종양이 있는 게 맞고 

 

MRI 검사 결과,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종양이 있는 걸로 판명되었다.

저번 진료 때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의심된다고 해서 다시 찍었던 거고, 

물혹은 물혹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얘기도 안 했음.

크기도 내가 물어봐서 알려줌;;; 5mm라고 했다. (5mm는 미세 선종이다. -> 이것도 검색해보고 앎-.-)

 

아무튼 종양이 확실해서, 뇌하수체 선종이라는 결과를 들었고, 산정특례 대상자라며 진료실에서 바로 처리해주셨다. 진료 끝나고 원무과 가서 취소 후 재결제하라고.

그리고 이전에도 설명했듯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선택하면 된다고,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으니 생각해보고 알려주라고 한 뒤에 진료가 끝남.

나와서 둘이 잠깐 의논했지만 좀 더 생각하고 싶어서 간호사 쌤에게 간단한 안내만 듣고, 결정하면 전화하라고 안내문만 받고, 원무과 가서 결제하고 집에 왔다.

 

뇌하수체 선종의 경우,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수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후도 나쁘지 않고.

그렇지만 교과서적으로는 호르몬 치료가 우선이다. 호르몬제를 먹으며 균형을 잡고, 호르몬제 영향으로 종양이 줄어들고(없어지기도 함), 그 후에 수술을 고민하는 게 교과서적인 순서라고 함.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각자의 기준으로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일단 수술이 무섭고 싫으며, 호르몬제를 장기 복용하게 되더라도 이쪽이 거부감이 덜했다.

그리고 수술한다고 해서 호르몬제를 안 먹어도 된다는 보장이 없고, 수술 후에 호르몬제 먹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굳이..? 하는 마음.

반려인의 생각도 나랑 비슷해서, 내 결정을 지지해줌.

 

사실 병원 나오기 전에 거의 마음의 결정은 한 상태였는데, 우리가 뭘 잘 모르고 선택하게 될까 봐 결정하지 않고 집에 왔다. 그리고 뇌종양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며칠간 정보를 찾아봄. 그리고 그냥 처음 생각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엄청 무섭고,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병이었다.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기 전까지 추측만 하던 약 두 달의 시간에 바빴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찾아보고 걱정할 틈도 없이 바빴던 덕분에 그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저 현실에 충실하게 살 수 있었던 거다. 

 

1. 처음 갔던 병원이 난임과 산부인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그래서 내분비과로 빠르게 연결되었던 것도)

2.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곳이었다는 점도,

3. 그 시기에 바빴다는 것도,

4. 난임과에 안 갔으면 몰랐을 질병을 이렇게 찾아내게 되었다는 것도(일반적인 피검사에서는 프로락틴 수치 같은 건 안 보니까.. 건강검진에서도 몰랐던 거다)

 

조금 떨어져 생각하니 감사한 일투성이다. 

 

 


12월 30일.

 

22일에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전화를 했는데,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장 빠른 날짜인 12월 30일에 세브란스 내분비과 첫 방문.

 

내분비과가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신경외과와 같이 있는 뇌하수체 쪽 내분비과다.

사실 내분비과로 다닐 거면 처음 갔던 동네 병원(차병원)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래도 역시 그대로 세브란스로 다니길 잘한 거 같다.

일단 병원을 다시 옮기려면 또 절차가 복잡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존 내분비과에서는 주로 갑상선을 다루는 것 같은데(아무래도 더 흔한 병이니), 여기는 아예 뇌하수체 전문 센터가 따로 있으니 더 전문적이라고나 할까.

카페에서 보니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병원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날도 사람이 몹시 많았고

담당 교수님은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치만 나름대로 설명해주셨고,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물어보셔서 다시 한번 브리핑함. 

난임시술을 앞두고 검사하다 발견했다고 했더니, 매일 먹는 약(팔로델)으로 처방해주셨다. 처음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알 처방하시려다가 일단 한 알만 먹어보자고 줄이심. 한 달간 약을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먹고, 피검사 후에 진료받으러 오라고. 

 

이 약이 다른 약보다 두통이나 메슥거림 같은 부작용이 조금 더 나타나는데, 혹시 먹어보고 너무 심각하게 힘들면 전화하라고 했음. 그럼 약을 바꾸거나 약 용량을 줄여서 반알만 먹는 식으로 한다고 했다.

(임신 계획이 없으면 '카버락틴'이라는 약으로 주는 듯.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른다. 효과가 차이 나냐고 물었더니 그건 전혀 아니라고 똑같다고 했음. -> 나중에 검색해보니 후자의 약이 안전성 테스트 같은 게 덜 된 거라는 말도 있고. 나도 잘 모름)

 

부작용이 걱정되어 찾아보니 엄청 심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전에 먹고 자다가 일어나서 구토를 한다거나, 두통이 너무 심해서 견디지 못하거나, 너무 어지럽거나, 시야가 흐릿해지거나, 별별 이야기가 다 있었음. 호르몬제 처방 후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서 휴직했다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겁을 엄청 먹었다. 

 

팔로델 처방 후에 부작용이 심해서 카버락틴으로 바꾸고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아서 더더욱 걱정했다.

 

첫째 둘째 날은(먹고 잔 다음 날) 속도 이상한 것 같고, 머리도 어지러운 것 같고 했는데 

15일 정도 복용한 오늘 상태로는 아주 괜찮다.

 

부작용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편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음.

정말정말 감사하다. 병이 있다고 했을 때만큼이나 부작용이 무서웠는데,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팔로델 부작용 없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제는 부디 피검사했을 때 호르몬 수치가 잘 떨어지길 바라고 있음.

약이 잘 반응하기를. 효과를 잘 나타내기를. 선종 크기가 줄어들기를. 

 

다음 병원 일기는 2월 초가 되겠다. 

그때까지 적당히 일하고, 잘 먹고 쉬면서, 적당히 운동하면서 즐겁게 오늘의 일상을 지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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